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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추천: 사물의 소멸/한병철/김영사

이쁜 비올라 2022. 9. 29. 11:48

사물의 소멸~ 

 


 
또 한권의 철학서와 만났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사물의소멸 
 
몇 해전 그의 책 '폭력의 위상학'을 읽고 단번에 그의 세계에 매료되었다.
폭력에 대한 개념을 이렇게 확장해서 설명할 수 있는 철학자가 있다는 것에 놀라웠고

다음해 그의 또 다른 책 '땅의 예찬' 을 읽으면서  그의 사고에 대한 덕후가 되었다. 
 
이번에는 '사물의 소멸' 이다. 
 
앞의 책들 보다 더 난해하고 만만치 않은 책이었지만 어제부터 이 책을 잡은 이후 늦은 심야!
급기야 오늘의 새벽과 오전을 몽땅 이 책에 할애한다. 
 
그의 심오한 사고의 세계에 문학적 필력이 더해져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은

엄청난 세계를 나에게 보여준다. 
 
오전의 일정으로 잡혀 있던 강의를 정중하게 거절하고 난 후 나의 시간이

필요한 시점에 이 위대한 한 권의 책과 마주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진다. 
 
한병철 ! 그는 이 책에서 디지털화를 비판한다. 
 
나 또한 디지털 세계에 접속해 한창 활동을 하고 있는 시기라서 
"어!" 하고  반문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그의 산파술에 완전히 압도당한다. 
 
소크라테스와 토론하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의 글을 따라 가며 완전히 두 손을 들었다. 
 
이 책에서는 철학자 하이데거의 이론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하이데거의 현존재 분석과 기술 비판에 대한 명쾌한 풀이로 디지털시대의

반사물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면서 정보화 물결에 휩쓸려 가는 인간을 염려하고 있다. 
 
그러나 전혀 반문할 수 없게 만든다. 그의 명쾌한 설명에서 독자인 나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다. 그를 이길수가 없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에서 펼친 현존재 분석은 "세계 안에 있음" 을

'손 '안에 있거나 '손' 안에 있는 사물들을 다루면서 그것들과 '사귀기' 로서 실현된다. 
 
'디지털' 이란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디기투스' 로 거슬러 올라간다. '디기투스' 는

손가락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손가락을 가지고 수를 계산하지만 디지털은

인간의 본질적인 영역인 손에서 벗어나 있다. 
 
한병철은 이야기 한다.
"정보가 생활규정을 지배하는 우리는 이제 땅과 하늘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구글 어스와 구글 클라우드에 거주한다." 고~ 
 
세계는 더 이해할 수 없고, 더 구름으로 자욱하고 더 유령 같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 작가 '오가와 요코' 의 '잃어버린 기억들의 섬' 이란 소설에서는

그 섬에 있는 사물들이 사라진다. 머리띠, 모자, 유표 등 .........

그러면서 사물과 함께 기억도 사라진다. 사람들은 영원한 망각과 상실의 겨울을

살아가며 모든 것이 해체되어간다. 급기야는 신체의 일부도 사라지고 결국엔

몸 없는 목소리들만 공중에 떠돌아다닌다. 
 
생각만 해도 정말 끔찍한 상상이다. 

 


 
한병철은 디지털화는 세계를 탈사물화하고 탈신체화하고 결국엔

탈실재화 한다고 한다. 

디지털은 기억을 없애고 우리는 기억을 되짚는 대신에 데이터와 정보를 축적하면서

이 정보들이 결국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들을 사라지게 한다는 것이다. 
 
오래된 사물에서 우리는 추억을 회상하고 자신의 신념을 투영할 수도 있다.

우리 곁에 오래 머물수록 자신과의 애착관계와 신뢰는 돈독해 진다.   
 
그러나 디지털화된 정보는 현재성을 띠는 기간이 아주 짧다. 정보는 시간에 취약하다.
하루가 지난 정보는 유용성을 상실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주소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나?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생각하면 앞이 캄캄해 진다.
결국 인간은 정보의 데이터 속에 휩쓸려 우주를 배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가끔씩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은 인간에게 안식처를 제공한다.

무상한 인간의 삶에 안정성과 연속성을 부여하며 우리는 그 사물 곁에 하염없이 머무를 수 있다. 
 
매일 새벽 내가 책을 읽기 위해 책상에 앉듯이 말이다....... 
 
그러나 정보 곁에 우리는 과연 머무를 수 있을까?
정보는 순식간에 과거가 되어 버린다.

정보는 우리를 영원한 현재성의 현기증 속으로 몰아넣는다. 
 
한병철은 책에서 정보를 '반사물'로 명명한다. 
정보 권 안에는 사물처럼 확실히 잡히는 것이 전혀 없다.

개념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디지털 소통은 인간관계를 심각하게 지배하고 그 결과 우리는

현재 어디에서나 연결망에 속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결코 결합되어 있지 않다. 
 
하이데거는 "아리스토텔레스는 태어나서 노동하고 죽었다." 라 말했다. 

여기서 노동은 생각하기다.
인공지능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정답은 no다 !

 


 
하이데거의 손은 디지털 질서에 맞서 땅의 질서를 결연히 방어한다. 
한병철은 하이데거의 이론을 빌려 '발'의 유용성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거친 바람 아래 멀리 까지 단조롭게 뻗은 밭고랑들을 가로지르는 느린 걸음의 억셈이

신발이라는 도구의 묵직하고 탄탄한 무게에 쌓여 있다.

가죽 위에 축축한 흙이 두껍게 앉아 있다. 신발 바닥 아래로는 해 지는 저녁을 헤쳐가는

들길의 외로움이 밀려간다.

신발 안에서 비밀에 부쳐진 땅의 부름이 윙윙거린다.

땅이 익어가는 곡식을 조용히 선물하는 소리가,

겨울들의 황량한 휴식기에 땅이 설명 없이 단념하는 소리가 윙윙거린다." 
 
이런 끝없는 철학적 사고를 이끌어내는 그의 문체들에 완전히 매료된다. 
 
디지털화 시대 !
세계를 받아들이는 각자의 시선은 다르다.
그러나 한번 쯤 현재를 돌아볼 필요는 있다.
나의 거침없는 행보에 잠시 생각의 우물을 파게 하는 책이다. 
 
사유의 접점에 다다를 수록 끝없이 이어지는 그의 필력에 계속해서

질문하며 이 책의 난해하고 어려운 구절들을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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