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지구 한바퀴/체코

체스키 크롬로프로 가는 길(세번째 이야기)

이쁜 비올라 2011. 6. 28. 00:02

<8월4일>



3일 동안 정들었던 체코의 정겨운 한인 민박집 보헤미안을 떠나는 날이다.
아침마다 감자 졸임에 된장국에 양배추 쌈에 두 그릇씩 비운 맛있는 아침밥과도 이별이다.
민박집을 나서 우리가 프라하에 있는 동안 즐겨 애용한 베트남 과일 가게에 마지막으로 들렀다.

아침마다 들려서 이것저것 시끄럽게 물건과 과일을 사던 우리를 못 마땅해 하던 가게 총각이 여느 때 와는 달리 무거운 배낭에 캐리어까지 끌고 온 우리를 보고 오늘 따라 반가이 맞아준다.

프라하에 있는 3일 동안 매일 아침마다 와서는 이것저것 만지고 가격만 실컷 물어보며 귀찮게 하던 달갑지 않은 저 세 악당들이 드디어 이 동네를 떠나는 구나하는 반가운 눈으로 우리를 맞아주는 것만 같아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로 했다.



그동안 절약 차원에서 많이 못 샀던 과일과 빵을 한 봉지 가득 샀다.
계산을 하는 동안 주인 총각이 슬며시 우리 눈치를 살핀다.
“얘네들이 오늘은 왜 이리 조용하지” 하는 표정으로........
과일 가게 베트남 총각의 진심어린 잘 가란 손 인사를 받으며 우리는 체스키 크롬로프로 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플로렌스 버스 터미널 방향 트램에 올라탔다.

이틀 전에 미리 표를 예매해 두었기 때문에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체스키 크롬로프로 가는 버스에 바로 오를 수 있었다.
운전기사 아저씨께서 가방 수를 물어 보시던이 가방 한 개 당 10꼬론을 달라고 한다.
우리가 버스에 올라 탄지 얼마 안 있어 버스 안은 꽉 찼다. 우리는 좌석에 앉았지만 버스 안에는 서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오전 9시35분에 출발한 버스는 여러 개의 경유지를 거쳐 오후 1시에 체스키 크롬로프에 도착했다.

2년 전에 왔을 때와는 달리 체스키 크롬로프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2년 전에 왔을 때 늦은 시간에 도착해 성안을 다 둘러보지 못 한 탓 에 이번에는 성 뒤쪽의 넓은 정원까지 살피며 성안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성안에서 내려다 본 마을의 풍경은 예전과 같이 여전히 동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체스키 크롬로프 관광을 마친 우리는 오후 4시 47분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로 가는 기차를 탔다.

언제나처럼 기차가 출발 하자마자 두 사람(아들. 조 선생님)은 또 다시 깊은 잠에 빠져 든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동화 같은 풍경들이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내 가슴에 내리고 내리며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을 만들어 준다.

체스키 크롬로프를 출발한 기차는 중간 중간 멈춰서 몇 몇의 사람들을 태우기도 내리기도 한다. 한순간 기차 안이 꽉 차는 느낌이 들어 열심히 자고 있는 두 사람을 깨웠다. 칸막이가 따로 없는 네 사람 정도가 탈 수 있는 기차라 행여 옆 사람에게 피해를 줄 까 봐.........
달리던 기차가 체스키 부데요비체란 역에 도착하자 그 많던 사람들이 일제히 다 내린다.

우리는 옆 사람들 때문에 경직되어 있던 몸을 자유롭게 풀며 프라하의 베트남 가게에서 사왔던 과일을 가방에서 꺼내어서 먹기 시작했다. 4인이 앉을 수 있는 의자를 각자 하나씩 차지해서 세 사람 모두 동시에 누웠다. 또다시 우리에게 여유로움과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나 그 평화도 역시나 오래가진 못했다.



‘이 역에선 정차 시간이 꽤나 길다’는 생각을 하며 누워서 열심히 청포도를 먹고 있는데 뚜벅뚜벅 발자국 소리가 점점 더 우리 귀에 가까이 들린다.
체스키 크롬로프에서 기차에 올라탔을 때 우리 표를 검사하고 표에다 구멍을 빵하고 뚫어 주던 여자 역무원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며 체코말로 뭐라 뭐라 쏠랑 거린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한 며칠 여행에서 얻은 눈칫밥으로 보아 “너희들 빨리 내려!”이런 내용인거 같다.
영문을 모른채 무작정 기차에서 내려 표를 보니 아하!
방금 온 기차는 체스키 부데요비체가 마지막 구간이다.
여기서 잘츠부르크가는 기차를 갈아 타 야 되는 것이다.

체스키 크롬로프에서 기차를 탈 때 경유지를 확인 안하고 기차표를 잃어버릴 까봐 역무원이 검사 한 후 바로 복대에 넣곤 확인을 하지 않은 것이다.
어둠이 하늘을 서서히 덮기 시작했다. 이런 낯선 곳에서 우리의 마음은 더 다급해져간다.
잘츠부르크 기차 시간표를 보러 가야 하는데...........
우리가 내린 낯선 플랫폼 반대편에서 기차 한 대가 연기를 내뿜으며 요란한 기적 소리를 울리고 있다.
빨간 깃발을 든 뚱보 역무원 할아버지가 “짤츠부르크!”라고 크게 외친다.



그때의 그 감동이란!.............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무거운 캐리어를 새털처럼 가볍게 들고 철로를 가로질러 그 기차를 타기 위해 전력 질주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아찔한 순간이지만, 조금은 성이 난 듯 또 조금은 어이없다는 듯 우리를 바라보는 할아버지께 일제히 “짤츠부르크!”라고 거수경례를 하며 금방이라도 떠날 것 같은 기차에 올라탔다.
정말이지 기차는 우리를 마지막으로 기다리기라도 한 듯 우리가 타자마자 칙칙폭폭 요란한 경적소리를 울리며 곧 바로 출발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기차를 놓치면 다음번 기차는 3시간이나 지난 밤 11시25분 기차로 짤츠부르크에 도착하면 역에서 노숙이란 이벤트를 맞이해야 할 뻔 했다.
지금도 유럽 여행 중에 가장 아찔했던 순간으로 그때의 일이 가끔 기억나곤 한다.

그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갑자기 여유롭고 평화가 찾아오면 위험이 곧 닥친다는 생각을 여행 내 내 가지고 다녔던 것 같다.
거구의 흰 수염 역무원 할아버지는 조그만 동양인 세 명이 애처로워 보였는지 “야호 ! 오스트리아 기차는 시설이 너무 좋다 ”라며 2등석 표를 가지고 멋모르고 1등석 룸 칸을 차지하고 환호 하고 있는 우리에게 표 검사를 하면서 “여기는 당신네 자리가 아니요” 라고 말했지만 지금은 좌석이 비었으니 그냥 앉아 있으라는 행운까지 안겨 주었다.



기차는 밤이란 어두운 터널 속을 향해 점점 깊이깊이 질주해 나가고 또 다시 잠 든 두 사람을 위해 나는 한층 더 눈에 힘을 주며 그들을 지켜야했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잠든 사이 기차가 짤츠부르크가 아닌 낯 선 도시에 도착해 있는 악몽을 꾸지 않기 위해서...................

 

 

 





프라하의 플로렌스 버스 터미널 ..... 이 노란색의 버스를 타고 체스키 크롬로프로 간다


저 멀리 체스키 크롬로프 성이 보인다
보헤미아의 성 중 프라하 성 다음으로 규모가 큰 체스키 크롬로프 성
성안은 4개의 정원과 큰 공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이사이에 무도회장,바로크 극장,예배당등 40여개의 건축물이 들어서 있다
 

성안에서 고악기를 연주하는 악사


뒤로 보이는 마을의 풍경이 너무 이쁘다.



평화로운 마을의 모습




성 안 뒤쪽의 넓은 정원



 성을 내려오는 길에 빨간 봉고를 발견하고 찰칵....




저 멀리 영국에서 왔다는 중학생 단체 여행자들



다음 목적지인 짤츠 부르크를 가기위해 열차표를 끊었다



너무나도 조용한 체스키크롬로프 역

이곳에서 짤츠 부르크가는 기차를 탔다.



 네번째 이야기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