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으로/전국 축제 한마당

일두 정여창 고택을 다녀와서

이쁜 비올라 2011. 10. 14. 11:18

함양에서 열린 노사초배 전국 바둑대회를 구경갔다가

틈을 내어 잠시 들린 일두 정여창 고택

 

 

함양 일두 정여창 고택

조선 오헌중에 한분인 문헌공 일두 정영창 선생(1450-1504)의 고택은 1570년대

후손들이 중건한 것으로 상류주택의 전통 가옥 구조로 중요민속 자료로 회자되고 있다.

정여창 선생은 김광필,이언적,이왕과 함께 동방의 오현으로 성리학을 크게 일으킨 분이다.

41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연산군을 가르쳤고 ,벼슬한지 4년만에 안의현감으로

임명된뒤 바른 일처리로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으나 1498년 무오사화로 함경도에 유배를 갔다가

55세의 일기로 안타깝게 숨졌다고 한다.

좌안동 우함양이라고 불리던 학벌과 문벌이 번성했던 시대에 우함양의 기틀을 마련한 분이

바로 일두 정여창 선생이시다.

 

 

 

 

 

 

 

 당시 상류 주택의 전통가옥 구조로 중요 민속 자료가 되고 있는 정여창 고택

 

 

 고택을 가기전 일두 정여창 홍보관에서 자세한 설명을 듣고 가면 고택을 둘러보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10,000제곱미터의 넓은 집터에는 솟을 대문,행랑채,사랑채,안사랑채,중문간채,안채,아래채,광채,사당등의

여러채의 건물들이 서있다.

솟을대문위에 5개의 충신, 효자의 정려패가 걸려 있어 조선시대 사회제도의 일면을 알수 있는

중요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왼쪽편에 일두 종택 정병호라는 적혀 있는 일두 정여창 고택....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사랑채와 붙어있는 행랑채

 

 

양반대가로의 면모를 고루 갖춘 일두 정여창 고택의 행랑채와 분어 있는 사랑채

 

 

안채 뒤쪽에서 바깥으로 나갈수 있는 작은 문이 있었다.

 

 

 마루 밑에 밥을 해먹을 수 있는 아궁이가 있다

 

겨울철 방에  불을 피우도록 하게 만든  아궁이들......

 

 

고택의 부엌과 찬장

 

 

 

 이 큰 가마솥에 대 식구들의 밥을 .....

 

 

안채 중심부분의 마당 우물!

우물을 중심으로 안채와 아래채가 있었다.

 

 

별당으로 들어가는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