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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시절과 기분/엔드 게임

이쁜 비올라 2020. 5. 1. 01:01




김봉곤 작가님의 두 번째 소설집 '시절과 기분' 이 창비에서 나왔다.

김봉곤 작가님에 대한 수식어는 많다!!

2020년대 한국문학을 이끌어갈 독보적 감수성을 지닌 작가 !!
빛나는 문장으로 쓰인 섬세하고도 세련된 마음의 서사 !!


이 책은  오프라인으로 완성본이 나오기 전에 가제본으로 받아 본 책이다.

시절과 기분'은 총 6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제본으로 받아본 책은 6편의 소설 중 '엔드 게임'이다.

'엔드 게임'은 살면서 가장 사랑했던 한 남자와의 이별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가장 소중한 걸 읽고 가장 바라는 걸 얻었어.

때때로 나는 비감에 젖고 싶을 때

또는 내 지금을 긍정하고 싶을 때 저 문장을 떠올리곤 한다.

살면서 가장 사랑했던 한 남자와 헤어졌고, 그와의 일을 글로 써 나는 데뷔했다"

소설 '엔드 게임'의 첫  서두는 이렇게 시작된다.



놀랍게도 이 소설은 퀴어소설이다.

퀴어소설이 이렇게 아름답게 구성될 수 있음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계절의 변화는 결국 변하고 다시 돌아오고마는

사랑의 속성을 대변하는 듯하다.

소설 속 화자는  언제나 더 사랑하는 쪽이어서 상처받고 아파하지만

도리어 그 사랑의 힘으로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야 마는 충만한 사람이다.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내고 비로소 이별할 수 있게 된 이 소설 속 ‘나’는

순환해서 돌아오는 계절처럼 새로운 사랑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기억 속 존재를 내려놓아야 함을 받아들이고 다음 계절로 나아가는 ‘나’

더 성숙해진 마음으로 삶과 사랑을 이어나가는 화자의 목소리를 따라가다보면

누구라도 애틋한 사랑의 기분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그냥 이별을 이야기하는 소설이구나 하고 읽다가 뭔가 평범한 사랑의 이야기는

아니다 라는 직감이 초반 부터 따라오더니 역시 반전이 있는 퀴어 소설이다.


작품 속의 '나'는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어떠한 사건을 겪고,

그 ‘시절’에 느낀 ‘기분’을 가슴에 새긴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 시절들은 아름답기도 하고 때로는 너절하기도 하지만

작가의 섬세한 문장은 그 안에서 빛나는 진실을 건져낸다.





그리하여 나는 그것을 알아야겠다. 내가 무엇을 정말 쓰고 싶었는지를,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의 형태를, 그와 나의 눈물의 이유를,

나를 무너뜨린 마음의 정체를, 되찾을 풍경과 열린 시간 속의 그의 모습을 나는 꼭 알아야겠다.

 다시 한번 내 시간 속에서, 내 시간 속의 그를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엔드 게임 중)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로 산다는 것은 많은 이들의 시선을 견뎌내어야 한다.

이 책이 처음부터 성소수자 '게이'에 관한 이야기란 걸 알았다면

나 또한 책 읽기를 조금 주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김봉곤 작가님의 이야기는 그런한 사회적 통념들을 까맣게 잊게 만든다.

책을 읽는 내내 성소수자에 대한 불편함은 온데간데 없고

누군가가 누구를 만나 어떠한 사건을 겪고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맞이하며

그 ‘시절’에 느낀 ‘기분’을 가슴에 새긴 채 살아가는 인물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박준 시인의 말 처럼 "김봉곤의 소설은 왜 이렇게 아름다울까?

책을 읽고 나 또한 이 말에 공감하는 한표를 던진다.


참 아름다운 소설이다.


거기서 우리는 잃어버린 계절-시절을 다시 만날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