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지구 한바퀴/스위스

유럽여행 54일째 (스위스 체르마트,피스트/이탈리아 밀라노)2014년 1월 6일(월)

이쁜 비올라 2014. 1. 7. 10:10

유럽 여행 65일 중 이제 앞으로 10여일 정도를

앞두고 있는 아들과 인수는 유럽여행 54일째인 오늘 스위스의 체르마트 피스프역에서

오후 2시32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 밀라노에 도착했습니다.

스위스의 살인 물가에 대비 밀라노는 숙박비 부터 9유로로

스위스 대비 엄청 낮아진 물가로 즐거워지기 시작했다는 아들^^

 

 

 

1월6일 아침 스위스의 체르마트를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체르마트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봅니다.

 

 

마터호른(Matterhorn, 4478m)은 미국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로고 덕분에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영화사의 로고를 보면 피라미드 모양의 봉우리가 구름을 뚫고 우뚝 솟아 있고

22개의 별들이 후광처럼 그 주위를 감싸고 있습니다.

 파라마운트의 선택은 탁월했던 것 같네요 ^^

 마터호른은 블록버스터 스키 여행지로 반세기가 넘도록 흥행가도를 이어오고 있으니깐요......

 

 

 

마터호른 산의 독보적인 최고봉의 모습은 직접 가서 보게 된다면

정말 감동일 것 같네요!!

 

 

마터호른의 봉우리가 정상에 보입니다

 

 

성 마우리티우스 교회와 마터호른산

 

 

지상에사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 마터호른

 

 

체르마트와 일본 교토시의 우호 기념비도 보입니다.

체르마트는 특히 일본인들이 좋아하고 많이 찾아 오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체르마트 중심가에는  입구를 신사(神社)처럼 꾸민 식당들도

있다고 합니다.

 

 

무공해 지역 체르마트 답게 교통수단의 하나인 마차

아마도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할 것 같네요

 

 

남은 스위스 프랑으로 마지막으로 체르마트에서 사먹은

맥주라고 합니다.

1.65프랑주고 구입한 스위스 맥주

 

 

체르마트에서 밀라노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피스프로

가면서 찍은 풍경이랍니다.

 

 

피스프 역 도착해서 밀라노 가는 기차 시간 기다리는 동안

역 주변을 구경했다고 하네요

 

 

체르마트에서 피스프까지는 1시간 10분정도 소요가 된다고 합니다.

 

 

보통 다른 지역에서 온 기차들이 이곳 피스프역에서 환승을 해서

체르마트나 취리히, 밀라노 등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피스프에서도 융프라우를 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밀라노행 기차 티켓

요금은 1인당 24프랑이고 예약비 명목으로 1인당 10프랑씩 추가 .......

 

 

밀라노 도착해서 밀라노 지하철 티켓 1회권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 

 성당 높이 157m 너비 92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고딕양식의 교회로

14세기 갈레아초 비스콘티의 지휘에 착공되었고 19세기 나폴레옹 왕자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135개의 첨탑과 성모마리아와 성 암브로조의 일화를 기록한 청동문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386년 밀라노의 영주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의 의견에 따라 대주교 안토니오 디 사루초가

기공한 밀라노 대성당은  프랑스나 독일의 대성당에 필적할 만한 것을 조영하기 위해

 본국 외에 독일과 프랑스의 건축가를 참가시켰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성당 건축 가운데

알프스 이북의 고딕적 요소가 가장 농후하답니다.

 

 

반면에 설계와 시공에 관한 의견 조정이 지극히 어려워 1577년에야 헌당되었으며,

부대공사 모두가 완료된 것은 1951년이었답니다.

내부는 5랑식(廊式) 본당, 3랑식 익랑(翼廊), 주보랑(周步廊)이 달린 본전(本殿)으로 되어 있으며,

천장은 측랑(側廊)에서 신랑(身廊)에 걸쳐 계단 모양으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외부 벽면은 대소의 부벽(扶壁)과 번잡할 정도로 많은 소첨탑(小尖塔)으로 장식되어

얼핏 보아 지극히 호화로워 보이나 통일감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고 합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

 

두오모 성당을 등지고 바로 오른편에는 아치형 유리천장의 아케이드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 입니다.

 

 

 두오모와 함께 밀라노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꼽히는 갈레리아는 건축가인

주세페 멘고니가 설계한 19세기 사교장으로, 세계 최초의 쇼핑센터라는

타이틀도 지니고 있는 이곳은 거리 양쪽을 따라 고급 명품숍과 카페.

레스토랑∙서점 등이 즐비하며 밀라노의 중심 역활을 하는 곳이기도 하답니다. 

이탈리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싸다고 하는 밀리노지만

명품구입은 이곳이 한국보다 거의 30%정도 저렴하다고 하네요 

 

택스프리를 받는것도 있지만 기본 가격이 한국 백화점보다는 저렴하다고 합니다.

 

 

갤러리 중앙의 대형 돔 아래는 로마∙피렌체∙토리노∙밀라노를 각각 상징하는

늑대∙백합∙황소∙적십자 모자이크로 꾸며져 있으며,

 특히 황소의 생식기 부분에는 성인 주먹만한 구멍이 뚫려 있다고 합니다.

 

 

갤러리아의 바닥에 있는 이  황소 모자이크는 12궁도를 나타내는데

이 부분을 뒤꿈치로 밟고 한 바퀴 돌면 행운이 온다는 '황소 밟기 전설' 때문인데

황소 모자이크 위를 빙글빙글 도는 관광객들을 쉽게 볼 수 있답니다

 

 

아들도 시도 중.......^^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빅토리아 엠마누엘 2세 갤러리 쇼핑몰에는 전세계 유명 명품 브랜드의

제품들을 다 만나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빅토리아 엠마누엘 2세 갤러리에 있는 식당에서 먹은 리조또

가격은 14유로랍니다.

다른 비쥬얼을 생각했는데 이런 리조또가 나와 조금은 당황했다는

그러고 보면 한국 물가 아직은 엄청 싸다는 느낌이 드네요......

 

 

밀라노에서 가장 오래된 패스트 푸드 점 Luinl 이라고 합니다.

소문을 듣고 온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네요

 

 

밀라노에서 유명한 팬자로띠 피자를 판매하는 곳으로

겉은 바삭한 찹쌀 도너츠 같은 느낌에 그 속에는 토마토와 모짜렐라 치즈로

채워져 있다고 합니다.

가격은 하나게 2.5 유로라고 합니다.

아들과 인수는 사람들이 너무 복잡해서 구입한 즉시

바로 먹어 버려서 사진은 못 남겼다고 합니다.

 

 

스칼라 극장

전 세계에서 가장 웅장한 오페라 하우스

 

1776년, 화재로 밀라노의 주요 극장이었던 테아트로 두칼레가 소실되었는데

극장 지분을 갖고 있던 이들은 당시 오스트리아의 통치를 받고 있던 이 도시의 수장에게

새로운 극장을 지어 달라는 청원을 올렸고, 더 웅장한 극장을 짓게 하라는 명이 내렸졌습니다.

새 건물은 1778년 개관했으며, 이 건물을 지을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축성을 거두어들이고 철거했던 산타 마리아 스칼라 교회의 이름을 따

 스칼라 극장이라 이름 지어졌답니다.

 

건물을 짓는 비용은 부유한 밀라노 시민들에게 거둬들인 개인 오페라 박스석,

즉 '팔치' 가격으로 충당되었는데, 이들 중 대부분은 예전 극장에서도 박스를 소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곧 '라 스칼라'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이 극장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었으며,

 널따란 광장을 향해 지어진 훌륭한 파사드가 그 특징이라고 합니다.

대강당은 3천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으며, 메인 플로어(플라테아)에서는

 청중들이 서서 공연을 관람했고, 그 위쪽으로 부유한 후원자들 전용으로

각기 화려하게 꾸며진 박스석이 있었답니다.

 

이 박스석 위에는 가장 열렬한 음악 애호가들을 위한 널따란 갤러리가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공연에 대한 아낌없는 찬사며 소리 높은 야유가 재빠르게 터져 나오곤 했답니다.

 

 

라 스칼라 극장 앞 광장의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동상

라 스칼라는 상류 사회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였지만

이 극장의 자랑거리는 항상 위대한 음악가들과 긴밀한 유대를 맺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특히 이탈리아 오페라를 상연하는 장소였다는 점입니다.

 

라 스칼라는 로시니, 도니제티, 벨리니의 작품들을 처음으로 무대에 올렸을 뿐 아니라,

여러 차례 다툼이 있기도 했지만 베르디의 작품도 많이 상연했답니다.

 

20세기 초에는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나비 부인>과 <투란도트> 등

푸치니의 작품을 라 스칼라에서 초연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폭격으로 손상되기는 했으나,

새로이 단장한 이 오페라 하우스는 당대의 일류 작곡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베리오와 스토크하우젠 등 아방가르드 음악가의 작품을 상연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