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지구 한바퀴/이탈리아

유럽여행 57일째 (이탈리아 베로나)2014년 1월 9일(목)

이쁜 비올라 2014. 1. 10. 04:38

밀라노에서의 3일 일정을 모두 마치고 유럽 여행 57일째인

2014년 1월 9일 밀라노의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오전 11시35분 기차를 타고

아들과 인수는 베로나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이탈리아는 기차 예약비가 워낙 비싸 여행 계획을 세울때 이탈리아 이동 구간은

유레일 패스 사용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마침 유레일 패스 글로벌 플랙시 2달  15일 사용도 이제 1일밖에 안 남았고......

 

밀라노에서 베로나 까지 소요 시간은 1시간 20분 으로

기차 티켓은 2등석으로 1인당 21.50유로 결재 했다고 합니다.

 

1시간 50분 정도 걸리는 12시 35분 기차는 1인당 11.55 유로에 갈수 있는데

가격이 싼 기차는 혹여나 소매치기를 당할까 하는 염려로 .......

 

 

 

베로나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 주에 위치한 도시 베로나는 고대부터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는 문화와 예술의 자취가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로마 시대의 아레나(Arena), 아디제 강가의 산체노마조레 교회 등이 대표적인 유산입니다.

2000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였습니다.

 

 

 

  베로나는 로마 시대의 유적이 가장 풍부한 도시 중 하나로

유적들 중에서 보르사리 문은 데쿠마누스 막시무스의 시작점에 있고,

레오니 문은 반만 남아서 뒤편 건물과 붙어 있습니다.

가비 아치는 나폴레옹 시대에 해체되었다가 1930년대에 카스텔베키오 옆에 복원되었으며,

 돌다리인 폰테 피에트라도 있습니다.


 

 

로마 시대의 건조물로는 원형극방과 아디제강(江)의 다리 등이 남아 있으며,

12∼13세기에는 롱고바르드(롬바르디아)의 지배하에 번영하였으며,

13∼14세기에는 겔프당과 기벨린당 사이의 투쟁이 있었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은 이 투쟁을 배경으로 하며,

 15∼16세기에는 조콘도, 산미켈리, 비토리오·피사노·파올로·베로네세 등에 의해

회화(繪畵)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베로나의 중심에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내려오는 건물이 매우 많습니다.

 산티 나자로 에 첼소 교회, 산타 마리아 교회, 산 조르조 교회, 산 토마소 교회,

 산 베르나르디노 교회, 산 에우페미아 교회가 있으며,

카노사, 폼페이, 베빌락쿠아, 포르타 팔리오의 문, 포르타 누오바, 포르타 산 제노,

 그 외에도 주교의 저택, 주스티 정원과 저택이 있습니다.

 19세기 오스트리아 시대의 유명한 건물들로는

카스텔 산 피에트로와 카세르마 산타 마르타가 있습니다.

 

 

누오바 문

 

1405년부터 1797년까지 베로나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부유하고 활기찬 지역이었습니다.

16세기 초에 있었던 충돌을 제외하면 평화로운 시기였는데 베네치아 인들은

베로나의 군대를 건축가 미켈레 산미첼리(Michele Sanmicheli, 1484~1559)에게 맡겨

중세의 요새를 강화하도록 하였습니다.

 

는 다각형의 요새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한 것 외에도 건축사에서 의미가 깊은

 3개의 문(포르타 누오바, 포르타 팔리오, 포르타 산제노)을 만들었습니다.

이 문들은 공동체의 성벽과 더 남쪽으로 스칼리제르 가문의 성벽 사이에 있는

지역의 도시 발전을 원활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에르베 광장 (Piazza Delle Erbe)

 

에르베라는 명칭은 옛날 베로나의 약초 시장에서 유래했답니다.

 에르베 광장 풍경은 고풍스런 건물이 좌우로 늘어서 있고 현지인 노점상으로 가득하답니다.

 

 

 베르나의 정치, 행정, 상업의 중심지로 광장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마페이궁전,

동쪽으로는 시청사였던 Torre dei Lamberti가 있고 광장에는 큰 시장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매일 오전 시장이 열려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으로

식료품을 비롯하여 다양한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광장 중앙에는

 14세기에 세워진 ‘베로나의 마돈나’ 분수 조각상이 있고 광장 끝 쪽에는

날개가 달린 사자상이 있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답니다.

 

 

 

 

 

원래는 약초 시장이었으나 지금은  현지인들의 노점상들이 들어차있고

멋진 건물들이 앞뒤좌우로 들어찬 아주 번화한 베로나의 광장이라고 합니다.

여름 관광시즌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은 인파로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산타 아나스타시아 교회(Santa Anastasia)

 

1290년~1481년 사이에 지어진 교회로 이탈리아의 다른 유명한 교회에 비해

 웅장하지는 않으나 베로나에서 가장 큰 교회입니다.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이탈리아에서는 드물게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으로

성당 내부 양 끝에는 성수를 등지고 있는 꼽추모양의 조각상과

성당 예배당에는 성베드로의 삶을 그린 조각상이 있습니다.

 

 

또한 중앙 제단의 예배당 내부에는 색채, 묘사, 기법 등으로 유명한 피사넬로의

 대표 작품이 있어 그 가치를 더욱더 높여준다고 합니다 

 

 

내부에는 피사넬로의 작품을 비롯한 많은 그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피에트라 다리와 아디제 강

 

 

아디제강

스위스 산지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내려 알프스를 거쳐,

 다시 롬바르디아 평원의 포강 북쪽에서 거의 포강과 나란히 동쪽으로 흘러

베네치아 남쪽에서 아드리아해로 흘러들어갑니다.

 

언덕위로 사이프러스 나무에 둘서싸인 원형극장인 로마 극장이 보입니다.

 

 

 산간 유역에는 트렌토, 산기슭 부근에는 베로나 등의 도시가 있으며,

산간의 골짜기 지대에는 이탈리아인과 독일계 농민이 옥수수와 밀을 재배합니다.

 

과거 수세기에 걸쳐 제방을 높이 쌓아올려 하류의 끝에서 80m 지점까지는

 완전히 인공수로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구에서 270km까지는 소항이 가능하며,

발전 ·수운 · 관개 등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피에트라 다리 (Ponte pietra)

이곳의 풍경은 베로나에서 손꼽힐 정도로 무척 아름답답니다.

다리 위의 피에트라 성과 다리 아래로 흐르는 아디제 강은 마치 그림에 나오는 것처럼

조화를 이루며 베로나를 더욱 운치있게 장식한답니다. 

이곳 풍경은  해가 질 때가 하루 중 가장 아름답다고 하네요 !!

 

 로마 극장 (현재는 공사중)

로마 제국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기원전 1세기에 건축된 것이라고 합니다.

 

 

 

로마시대의 다리인 피에트라 다리와 포수토미오 다리 제방 위 언덕에 세워져 있는데

아디제 강의 홍수를 막기 위하여 쌓은 제방을 중심으로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과 함께

세워져 있습니다.

 

 

사이프러스 나무로 둘러쌓인 둥근 원형 형태의 극장으로 로마극장 뒷편 언덕에는

수도원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 있습니다.

로마극장은 원래는 실내 극장이었으며 현재 남아 있는 로마 극장은 공연장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18세기 베로나의 상인이 이 지역을 구입하여

발굴작업을 시작한 이래 오늘날까지 발굴, 조사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두오모

 

 

피렌체, 밀라노 등의 도시들에 비해 베로나의 두오모는 특색이 있거나

규모가 웅장하지는 않지만 나름의 멋과 매력을 가진 곳이랍니다.

 

 

성당 내부에는 티치아노의 ‘성모 마리아의 승천’을 비롯하여

이와 비슷한 느낌의 돔 프레스코화 등이 있답니다.

 

 

 

두오모 외벽에 조각된 인물들은 모두 성인이라고 합니다. 

 

 

시뇨리 광장 (Piazza dei Signori)

 

 

 

에르베 광장에서 코르타 문(Arco della Corta)을 통해 들어가면 이어지는 광장입니다.

 

 

베로나의 대표 광장 중 하나로 광장 안에는 르네상스 건물들과 단테의 동상이

매우 멋스럽게 들어서 있으며, 또한 12세기 지어져 현재에는 시청사로 쓰이고 있는

 라조네 궁과 궁 안에는 람베르티 탑(Torre dei Lamberti)가 있습니다. 

 

 탑에 오르면 베로나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보이며, 그 밖에 카피타노 궁(palazzo del Capitano),

 회랑과 스칼라 가의 궁전 등이 있어 광장을 더욱 빛나게 해준답니다

 

 

 

람베르티 탑(Torre dei Lamberti)

 

베로나에서 가장 높은, 12세기의 탑으로 1172년 람베르티 가문에 의해 지어졌으며

여전히 그 이름으로 불리는 이 탑은 84m의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데, 베로나에서 가장 높은 건물입니다.

1972년부터 이 탑은 방문객들에게 개방되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가

 도시의 눈부신 정경을 즐길 수 있으며, 맨 처음에 지어졌던 탑은

 로마네스크 양식이었는데,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고 합니다.


 

 

현재의 탑에서 벽돌과 튜퍼(탄산칼슘과 석회가 침전되어 생성된 다공질의 퇴적암)로 지어진,

 탑 아래쪽 부분의 경계를 이루는 곳을 보면 그 높이를 알 수 있는데

탑에 달린 두 개의 종인  렌고와 마란고나가 있는데, 첫 번째 종은 사람들을

공적인 모임에 불러내는 데 쓰였고, 두 번째 종은 근처 광장에 사는 장인들에게

일하는 시간을 알려 주는 데 쓰였다고 합니다.

'마란고나' 라는 이름은 '목수'를 뜻하는 지역 방언에서 왔다고 합니다.

1403년 엄청난 벼락이 쳐 탑 꼭대기에 심한 피해를 입혔으며, 1448년에서

 1464년에 걸친 재건축 작업에서 탑은 현재의 높이까지 올라갔으며,

 세 개의 등불이 달린 우아한 창문들 위로는 세련된 팔각형 종탑이 지어졌습니다.

 

18세기 말에는 커다란 시계가 탑에 달리게 되었고, 탑에서 겨우 몇 미터 걸어와

철로 세공된 고대의 관문을 넘어 가면, 방문객들은 곧바로 베로나 고딕 건축물의

뛰어난 걸작과 마주하게 되는데 바로 스칼리제르 무덤(아르케 스칼리제레)입니다.  

 

 

 

이곳에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베로나를 다스렸던 람베르티 가문에서

가장 명망 높은 인물들, 칸그란데 1세, 마스티노 2세, 칸시뇨리오, 알베르토 1세,

 조반니 델라 스칼라 등의 유해가 매장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산타 마리아 안티카 교회 옆에 있는, 조각이 새겨진 웅장한 대리석 관에

 안치되어 있는데, 조각상으로 장식되어 있고 피라미드 모양의 풍성한 차양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람베르티 탑과 스칼리제르 무덤은 중세에 그랬듯이 지금도 베로나 한가운데에 위치하며,

그 주변에 건설된 다른 기념물과 더불어 멋진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합니다.

 

 

 

줄리엣의 집[ Juliet’s House ]

 

.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줄리엣의 집인 이곳은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연인들에게 사원과 같은 곳이랍니다.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상징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만큼 방문객들로 하여금

이렇게 벽에 낙서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답니다.

 

오늘날 이 집은 건축학적, 역사적, 문학적 사연뿐만 아니라

끝없는 낙서로도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베로나를 방문했다는 증거는 없으나 그의 희곡은

 서로 적대적인 두 가문에 대한 이탈리아 전설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그는 이 가문에 캐풀렛과 몬태규라는 이름을 붙였고, 사실 현재 줄리엣의 집이라 알려진

이 저택은 한때 델 카펠로라는 이름의 가문의 소유였던 적이 있는데,

셰익스피어가 붙인 캐풀렛이라는 이름은 여기서 왔을 법도 하답니다.

 

 

아치 꼭대기에 박힌 돌에서는 아직도 델 카펠로 가문의 문장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정원에 세워진 줄리엣의 동상

 

희곡의 등장인물들이 실제 인물에 근거한 것인지 여부는 열띤 논쟁의 대상이었지만,

 로미오나 줄리엣이 정말 존재했든 아니었든, 그들의 이야기는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 쓰인 가장 훌륭한 러브 스토리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그렇기에 전설적인 기념물이 될 만한 자격이 충분하답니다.

 

이 집에는 현재 아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좋을 발코니가 있다고 하네요 ^^

 

 


이 발코니는, 로미오가 자신의 사랑을 털어놓는 순간 줄리엣이 서 있던 발코니라는

소문이 있지만 사실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살았다고 여겨지는 시대보다

몇 세기나 뒤에 이 집에 증축된 부분이랍니다.

 

 

근처에 로미오의 집이 있으며, 줄리엣의 무덤이라 여겨지는 무덤이 있답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안에 유골이 없다고 주장한다고 하네요 ^^)

 

 

오늘날 이 집은 작은 박물관이 되었으며, 계단을 타고 올라가 발코니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습니다.

 

 

20세기에 제작된 줄리엣의 청동상도 서 있는데, 조각상의 오른쪽 가슴을 어루만지면

사랑에 행운이 따른다는 관습 때문에 그녀의 오른쪽 가슴은 항상 반들반들

빛나고 있다고 하네요^^

 

 

줄리엣 집 들어가는 복도 벽의 전세계에서 찾아든 관광객들의 낙서로

이곳이 더 유명해 졌다고 합니다.

 

 

줄리엣의 집이 있는 카펠로 거리 (via cappello)

 

 

베로나의 번화가 마치니 거리(via giuseppe mazzini)

 

아레나에서 에르베 광장으로 가는 길의 좁은 골목인 마치니 거리는 베로나 최고 번화가.

로마, 베니스, 피렌체보다 훨씬 깔끔하고 세련된 거리로 거리 양옆으로는

각종 명품매장과 구두, 가방, 핸드백 등을 파는 잡화점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답니다.

 

 

마치니 거리의 젤라또 가게에서 사먹은  젤라또

 

 

 브라 광장 (Piazza Bra)의 아레나

 

유럽에서 3번째로 큰 원형 경기장이자 현재는 오페라 극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곳

 

베로나의 아레나는 로마에 있는  콜로세움과 나폴리 근처 카푸아에 있는 경기장에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원형 경기장입니다.

고대부터, 배우들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무대 위를 누벼왔고, 이 경기장은

 아우구스투스 황제 통치 시기였던 서기 1세기에 세워졌으며,

로마의 시인 카툴루스부터 셰익스피어에 이르는 여러 작가들의 펜에 의해 불멸의 도시가 된

 베로나에 있습니다.

 

 

영원한 베로나의 상징이자 고고학적인 보고인 이 아레나는 원래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로마 건축술이 일구어낸 승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아도 굉장한 규모로, 로마인들은 도시 성벽 밖에 아레나를 세우고,

지역의 산지에서 캐내 온 하얀 대리석 마름돌을 쌓아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265년, 갈리에누스 황제에 의해 성벽의 범위가 확장되어 원형 경기장은 도시의 일부가 되었고,

 12세기에 지진이 일어나 외부의 원형 벽이 크게 파손되었지만, 그 외에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매우 굳건히 버텨 왔으며, 로마 시대의 원형 경기장 중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축에 속한다고 합니다.

 

 

검투사들의 경기를 벌였던 것 외에도 복잡한 배수 시설이 갖추고 있는 이 경기장은

흥미진진한 수상 경기도 열 수 있었는데, 중세 아레나에서는 마상 시합과

토너먼트 같은 좀 더 의례적인 경기가 열렸습니다.

 

 18세기에는 연극 공연만 전문적으로 하는 장소가 되었으며,

1913년에는 이곳에서 최초로 야외 오페라 축제가 열렸습니다.

 

주제페 베르디의 <아이다>를 공연함으로써 이 행사는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그 이후로 여름날 오후 베로나 아레나에서 상연되는 오페라는, 2천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방문객들을 경탄케 하는 이 유적에서 역사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안고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수천 명의 관객들을 이끌고 있다고 합니다.

 

 

 브라 광장 주변의 그란 가르디아 궁전 (Palazzo della Gran Guardia)으로

현재는 베로나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멋진 시청 건물인 것 같네요 !!

 

 

브라 광장(Piazza Bra)

 

 

 

 

카스텔 베키오(베키오 성)Castel Vecchio

 

카스텔 베키오는 베로나 대공 칸그란데 Ⅱ 델라 스칼라의 요새 궁전으로 지어졌습니다.

 도시 서쪽, 아디제 강이 굽는 곳으로 베로나를 지배하는 동시에 동란이 일어났을 경우

 폰테 스칼리게로 다리를 통해 군주를 안전하게 대피시키기에 적절한 위치입니다.

 

 

칸그란데는 주민들에게 엄청난 세금을 물려 부를 쌓고는

이 돈을 모두 베네치아와 피렌체의 은행으로 빼돌렸다가,  결국 주민들의 증오를 사게 되어

 동생의 손에 살해당하고 만답니다.

거대한 성은 강의 흐름을 따른 사다리꼴 형태로, 총안을 빽빽하게 뚫어 놓은

 파사드와 일곱 개의 망루, 두 겹의 성벽, 내리닫이 격자 성문 등으로

시가지로부터 보호 받고 있으며, 내부는 두 개의 안뜰을 중심으로

 군주를 호위하는 용병 근위대를 위해 충분한 공간을 배치한 것이 특징입니다.

 

칸그란데의 거처는 보다 엄중한 경비를 받는 두 번째 안뜰을 중심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으며

토레 델 마스티오(마스티오 성문)를 통해 폰테 스칼리게로 직접 연결된답니다. 

 

 

 

폰테 스칼리게 역시 성의 일부로 설계되었으며 요새화되어 있는데,

건축가 카를로 스카르파는 근대적인 요소를 교묘하게 끼워넣음으로써

카스텔 베키오를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답니다.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요

내부에서는 콘크리트 통로가 중세의 벽돌 구조와 맞물리며,

전시품들은 대조적인 벽 표면을 배경으로 걸려 있습니다.

즉 전시품뿐만 아니라 전시 그 자체도 이미 충분히 예술인 이라고 하네요!!

 

 

카스텔 베키오 성 건너편의 카보우르 동상

 

이탈리아의 정치가로 농업장관 겸 재무장관, 총리를 지냈고

파리평화회의에서 이탈리아의 통일을 유럽의 중요문제로서 열강에 인식시킨 인물.

 

나폴레옹 3세의 지지로 오스트리아군을 격파, 롬바르디아를 해방시켰고

 샤르데냐왕국을 중심으로 점진적 통일을 추진하여 국가통일을 이룬 주역인물입니다.

  

 

숙소에서 검색한 맛집을 찾아와서

14유로 주고 먹은 점심이랍니다.

오랜만에 식당에서 밥 같은 밥을 먹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