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지구 한바퀴/프랑스

유럽여행 31일째 (프랑스 파리, 베르사이유 궁전)2013년 12월 14일(토)

이쁜 비올라 2013. 12. 16. 05:30

 

 

아들은 지금 65일간 유럽 12개국 배낭 여행중이랍니다.

여행도 어느듯 중반에 와 있는것 같네요

오늘이 벌써 유럽 배낭 여행 31일째로 현재 프랑스 파리에 있답니다.

프랑스에서는 11일간 체류중인데요

오늘은 파리 서남쪽 23km에 있는 절대주의 왕권의 영화를 상징하는

대궁전으로 '짐은 국가다' 라고 했던 루이 14세가 20년에 걸쳐 세운

베르사이유궁전 투어를 했답니다.

유레일 패스가 있으면 베르사이유 가는 RER 열차가 무료랍니다.

 

자 ! 지금부터 루이 14세의 거작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가 보실까요 !!

 

 

 

저 끝으로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궁전 중 하나로 불리는

루이 14세의 절대왕정의 표본인 베르사이유 궁전이 보입니다.

 

 

아름 광장에  있는 루이 14세의 기마상 입니다.

' 짐은 이제 죽는다. 그러나 국가는 영원하리라' 를 남기고  죽음을 맞이한

루이 14세(1638, 9, 5 - 1715, 9, 1)

대왕’ 또는 ‘태양왕’이라고 불렀으며, 부르봉 절대왕정의 전성기를 대표한 군주 !

 

 

루이 14세의 기마상

 

 루이 13세와 안 도트리슈가 결혼한 지 23년 만에 생제르맹앙레에서 태어난 그는

5세 때 즉위하였으므로, 모후 안 도트리슈가 섭정이 되고,

J.마자랭을 재상으로 임명하여 보필을 받았답니다.

 이때 프랑스는 30년전쟁과 관련된 에스파냐와의 전쟁으로 나라가 피폐하였으므로

국민들은 점차 반항의 기미를 보였고, 파리고등법원은 국민의 입장을 대표하여

왕권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일어났던 시기랍니다.

 

 

여기에 대귀족과 불평분자의 책모가 작용, 프롱드의 난이 일어나 전국을 혼란에 빠뜨렸고,

왕은 파리를 떠나 모후와 함께 각지로 유랑하는 고난을 겪기도 하였답니다.

 이 난은 오랫동안 왕에게 불쾌한 기억으로 남게 되고,

파리가 싫어져 나중에는 궁전을 베르사유로 옮겼다고 합니다.(1682).

 

 

프롱드의 난이 진압된 뒤에도 재상 마자랭이 정치를 독단하다가 1661년에 죽자,

왕의 친정(親政)이 시작되었는데, 왕은 재상제를 폐지하고 자신이 직접 고문관회의를 주재하였으며,

대신들에게 명하여 자기의 결정사항을 집행하게 하였답니다.

 

 

정부의 임시적인 특사의 성격을 띤 앵탕당(지사)의 직무를 확대하여

각지에 상주시킴으로써 명령에 따라 손발처럼 움직이는 관료의 조직망을 전국에 폈으며,

파리고등법원의 칙령심사권을 박탈하여 법원을 단순한 최고재판소로 격하시켰답니다.

 노랑 풍선은 어디서 받았는지 베르사이유 궁전 입성 샷을 이렇게 생뚱맞게 아들이 남겼네요^^

 

 

그리하여 루이 14세는 흡사 ‘살아 있는 법률’과 같은 존재가 되었고,

스스로 “짐(朕)은 곧 국가이다”라고 할 만큼 절대주의시대의 대표적 전제군주가 되었답니다.

 

왕은 마자랭 재상 때의 재무총감을 독직과 관련하여 단죄하고

J.B.콜베르를 재무총감으로 기용한 것이 그의 치정을 빛나게 하였는데,

콜베르는 중상주의 정책을 채택하여 보호관세에 의한 무역의 균형을 꾀하는 외에

산업을 육성하고 식민지의 개발을 추진하였답니다.  

 

 

베르사이유 궁전 입장료 18 유로네요

 

 

루이 14세는 콜베르 외에도 많은 명장과 현신(賢臣)이 배출되었는데,

왕은 이들의 재능을 종횡으로 구사하여 유럽의 열강을 상대로

플랑드르전쟁(1667∼1668) ·네덜란드전쟁 ·아우크스부르크동맹전쟁(팔츠계승전쟁)

·에스파냐계승전쟁을 강행하였다.

 

 

왕은 이 전쟁으로 유럽의 지도권을 완전히 장악하였고,

 파리 교외에 지은 베르사유궁전은 유럽 문화의 중심이 되었으며,

왕의 치세 중에 P.코르네유, J.B.라신, 몰리에르 등의 거장이 나와

고전주의 문학을 꽃피웠고, 이때 프랑스어가 우아하게 세련되어졌다고 하네요

 

황금색의 베르사이유 문이 그 옛날 부르봉 왕조 시대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것 같네요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한 루이 14세는 자신을 지상에서의 신의 대행자라 하여

왕권신수설을 주장하였고, ‘하나의 국가에 하나의 종교’를 표방,

1685년에는 낭트칙령을 폐지하고 신교도를 박해하였으며, 장세니스트를 탄압하였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상공업에 종사하던 신교도들이 국외로 이주함으로써

프랑스 산업은 타격을 받았으며, 여러 차례의 대외 전쟁과 화려한 궁정생활로

프랑스 재정의 결핍을 초래하고 절대왕정의 모순이 증대하여,

후에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는 한 원인이 되었답니다.

 

 

베르사이유 궁전(LE CHATEAU DE VERSAILLE)
파리 서남쪽 23km에 있는 절대주의 왕권의 영화를 상징하는 대궁전으로

 '짐은 국가다' 라고 했던 루이 14세가 20년에 걸쳐 세운 궁으로

이후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앙트와네트가 호사를 누리다가 프랑스 대혁명으로

비운을 맞은 곳이기도 합니다. .

 

 

건물의 규모면에서나 절대왕정의 예술품에서나 세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궁전이라 할 수 있으며 100ha 나 되는 대정원은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답니다 

 

 

프랑스의 궁전 내부는 대부분 비슷한것 같네요

베르사이유 궁전 투어도 어제 여행을 마친 르와르의 고성 투어와

비슷하게 진행되었는데 아들의 개인적인 얘기로는

르와르의 쉬농소성이 더 인상 깊었다고 하네요

 

 

베르사이유 궁전의 대 접견실은 한편으로는 레하클레스 살롱,

그랑자빠르뜨망(GRANDS APPARTEMENTS)이라 불리는 6개의 살롱과

그 유명한 거울의 방으로 구성된 리셉션 장소이며,

다른 편으로는 왕과 왕비의 공적인 생활을 위한 주거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답니다.


 

 

베르사이유 궁의 극에 달한 사치와 향락 생활이 화려한 이곳에서 이루어졌답니다.

 

 

베르사이유 궁전은 원래 루이 13세가 지은 사냥용 별장이었으나,

1662년 무렵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대정원을 착공하고

1668년 건물 전체를 증축하여 외관을 가로축 부분이 앞으로 튀어나온

U자형 궁전으로 개축하였답니다.

 

 

1680년대 다시 커다란 건물 2동을 증축하고 남쪽과 북쪽에 별관과

안뜰을 추가하여 전체길이가 680m에 이르는 대궁전을 이루었답니다.

 

 

이때 정원 쪽에 있던 주랑을 '거울의 방'이라는 호화로운 회랑으로 만들고,

궁전 중앙에 있던 방을 루이 14세의 방'으로 꾸몄답니다.

 

 

 

 

 

 

 

 

 

 

 

 

그랑자빠르뜨망(GRANDS APPARTEMENTS)
이탈리안 바로크 양식으로 금 장식을 한 구리, 청동, 대리석 등

고급스런 재료들을 주로 사용한 루이 14세 스타일의 화려한 건축물로서,

일주일에 세 번씩 사치스런 파티가 열렸던 장소랍니다.

 

 

 

그랑 다빠르뜨망은 뷔페 연회가 열렸던 Salon de l'Abondance와

루이 14세 때에 당구장으로 쓰인 Salon de Diane,

원래는 대기실이었으나  때때로 리셉션 장소로 쓰인 Salon de Mars,

각국의 외교 사절들을 접견하던 Salon d'Spollon,

화려한 천장화가 유명한 Salon de Venus로 구성되어 있답니다.

 

 

루이 14세의 초상화

 

 

베르사이유 궁전의 모형 

 

 

 

루이 14세 시대의 베르사이유 궁전 모습

 

 

 

 

 

 

 

 

 

 

 

 

 

 

 

 

 

 

천정의  살롱 드 비너스 장식화

 

 

 

 

 

루이 14세의 상이 궁전 곳곳에 있는 것 같네요

 그당시 절대왕권이었던 왕 중심의 나라의 모습을

이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확연히 느낄수 있는것 같아요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가장 유명한 거울의 방으로 들어 갑니다.

 

1687년 망사르가 완성한 거울의 방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데요

길이 75m, 높이 12m의 넓은 방을 17개의 벽면으로 나누어 578개의 거울로 장식하였답니다.

 

 

거울이 17개의 아케이드를 천장 부근까지 가득 메우고 있고

천장은 프레스코화로 뒤덮여 있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거울생산이 가능해졌다고해요.

따라서 사람들은 벽난로 위나 벽면에 거울을 끼워넣은 인테리어를 많이했고

 그러면서 거울로 실내장식을 하는 방법이 대유행을 했다고 하네요

 

 

이곳에서는 주로 궁정 축제와 중요한 행사들이 열리거나

  외국특사를 맞을 때 사용되었으며,

화려한 내부장식을 한 '전쟁의 방'과 '평화의 방'으로 이어진다. 

 

 바로크 양식을 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곳이라 할 수 있으며

  제1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는 베르사유조약이 체결된 곳이기도 합니다,

 

 

 

 

 

루이 14세

 

 

그 당시 왕가에서 사용했던 식기들

촛대 하나에서도 예사롭지 않은 화려함과 왕의 권위가 느겨지는듯.....

 

 

왕비의 처소 입니다.

마리 앙투와네트 왕비가 황태자를 출산했던 곳이랍니다.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침실을 재현한 것이라고 하네요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은 건축가 루이 르 보, 화가 샤를 르 브륑,

건축가 쥘 망사르, 조경 설계사 르 노트르를 비롯한 수많은 거장들의

합작품이랍니다.

 

 

건축가 르 보르는 중앙건물에 양쪽으로 펼쳐진 윙을 덧붙여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확장해 갈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고,

이러한 확장은 정원에도 반영되었다고 합니다.

 

베르사유 조경(造景)의 특징은 우선 규모가 큰 축(軸)의 개념이 도입되었고,

커다란 운하가 동서·남북을 연결하고, 통경선(vista) 수법을 즐겨 사용하였으며,

각종 자수화단을 설치하여 건축적 공간은 오히려 정원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데 있다고 합니다.


 


하나의 축을 따라 좌우는 대칭을 이루었으며 포장, 조각, 분수 등 모든 재료는

호화롭고 화려한 것으로 장식하였고, 총림(叢林:bosquet),

짙은 녹색의 수림으로 이루어진 복도(tapis vert) 등은

당시 왕실의 영화(榮華)를 잘 반영하고 있답니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규모가 너무나 방대해서

하루종일 베르사이유 궁전 투어를 했는데도 정원은 자세히

관람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마리앙두와네트 지역에 가기 위해선  궁전 안에서 다니는

이 관광 기차를 이용하면 된답니다.

요금은 6.9유로 

 

 

그랑 트리아농(GRAND TRIANON)
랑 트리아농은 루이 14세가 매트농 부인을 위해 지은 별궁이랍니다.

 

 

 

프랑스 일드프랑스(Île-de-France) 서쪽 지역 이블린(Yvelines)

데파르트망의 베르사유(Versailles)에 위치하고 있는 궁전으로,

 프티 트리아농(Petit Trianon)과 함께 베르사유 궁전(Château de Versailles)의

별궁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본래 궁전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북서쪽 소운하(Petit Canal) 근처에 자리하고 있답니다.

 

 

루이 14세(Louis XIV, 1638 ~1715)가 애인이었던

매트농 부인(Marquise de Montespan, 1641~1707)를 위해 지은 궁전으로

그는 이곳에서 애첩을 비롯한 가까운 동료들과 함께 궁전 격식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절정의 바로크 양식을 보여준 것으로 유명한 왕실 건축가

망사르(Jules Hardouin-Mansart, 1646 ~1708)가 설계를 맡았으며,

 1687년 시작된 공사는 1688년 끝이 났답니다.

 단층 건물로 완공된 궁전은 아름다운 분홍빛 대리석 외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리석 트리아농’이란 별칭으로도 불렸답니다.

 

 

방마다 기다란 창문이 나있으며 기둥의 끝 부분은 섬세한 조각으로 꾸며져 있는데,

궁전의 내부 또한 매우 화려하답니다.

 

 

조각상, 그림, 가구 등을 비롯한 다양한 왕실 장식품 및 예술품 등을 볼 수 있답니다.

 

 

 주변에는 잘 정돈된 그랑 트리아농 정원이 있는데,

 궁전 및 정원은 프랑스 혁명기 일시적으로 방치되었으나

나폴레옹 시기에 다시 사용되었답니다.

 

 

현재는 베르사유를 찾는 관광객들의 주요 방문지 중 하나가 되었으며

종종 국빈들을 맞이하는 장소로 쓰이기도 한답니다.

1979년 베르사유 궁전 지구에 포함되어

유네스코(UNESCO)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답니다. 

 

 

원래 트리아농은 1670년부터 1687년까지 외관을 자기로 장식하고,

루이 14세가 몽떼스빵 부인과 함께 간식을 먹으러 잠시 들르던 곳이었으나

결국 견고하지 않은 자기는 파손되었고

그동안 루이 14세의 애첩이었던 몽떼스빵 부인은 총애를 잃게 되었답니다.

 

 

그 후 망사르는 6개월 만에 대리석으로 된 견고한 트리아농을

새로 지었으며 지금까지 그 아름다운 자태를 유지하고 있답니다.

장미빛 대리석으로 된 외관과 실내장식은 눈이 부실 정도라고 하네요.

 

 

 

 

 

 

 

루이 14세때의 당구장으로 사용되던 룸입니다.

 

 

 

 

 

프티 트리아농

 베르사이유 궁전 안에 자리한 샤토 뒤 르 프티 트리아농은

1760년대 이후 유행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단아한 취향을 반영하고 있답니다.

 

 

고대 그리스 건축의 오더와 절제된 형태에서 영감을 받은

 프티 트리아농의 외관은 소박하고 간결하여 도덕적 덕목을 암시하는 듯하네요

 

 

 프티 트리아농은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퐁파두르 부인을 위해

건축가 자크-앙주 가브리엘에 의해 1762년부터 1768년 사이에 세워졌답니다

 

 

그 비례를 보면 정통 정원에 정육면체를 세 층으로 쌓았는데

길이가 34미터인 정육면체의 각 면은 바닥에서 천장까지 닿는

 다섯 개의 프랑스식 창을 설치하고 정원과 안뜰 쪽 파사드에는

코린트식 기둥 4개로 구성된 열주를 배치했답니다

 

 

1774년 루이 16세는 프티 트리아농과 그 주위의 공원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선사하였고,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프티 트리아농은 격식과 의무로 가득 찬

궁정 생활을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였답니다

 

 

왕비의 개인 아파트는 우아한 목각 세공, 특히 조르주 자콥과

장 앙리 리즈넬이 제작한 가구들로 유명하답니다.

 

 

매우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건축양식의 프티 트리아농

루이 14세 스타일의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이 가구들은 꽃과 추수 풍경을 눈앞에 불러일으키는데,

 내부에는 침실 스위트, 음악실, 접견실, 그리고 열세 개의 침실이 있답니다.

 

 

앞마당에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 설치한

유럽에서 가장 학문적인 온실이 있으며 1776년부터 1783년에는

건축가 리샤르 미케에 의해 다양한 건축 양식의 영향을 받은 정자가 서 있답니다.

 

 

그당시 사용되던 궁중의 제복들과 그릇들도 전시되어 있답니다.

 

 

 

 

프티 트리아농내의  왕비의 농가 입니다.

 

 

 

마리 앙투와네트가 사랑한 곳이란 이곳 프티 트리아농내의

왕비의 마을은

 영국식 정원과 중국식 정원을 혼합한 아늑한 느낌의 정원이 있으며,

정원 한구석에는 아담한 초가지붕 농가를 모아놓은 시골풍 마을이랍니다.

 

화려한 베르사이유 궁전과는 정말로 대조적인

소박한 풍경이지만 웬지 정겹게 느껴지네요

 

 

 

18세기 귀족들 사이에는 직접 시골 생활을 체험하고

마을을 소유하는 것이 크게 유행하였다고 합니다.

 

 

왕비 농가의 방앗간

 

 

커다란 호수로 둘러싸여 있는  10여채의 농가로 이루어졌던

이 작은 시골 농가도 귀족들의 취미를 위하여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하네요

 

 

전원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한가로운 풍경입니다.

 

 

 1783년 조성되어 '마리 앙투와 네트의 마을' 이라고도 하는데요

그녀는 이곳에서 농촌 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왕실의 사치스러운 생활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

이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마리앙투와 네트 영지의 왕비의 집

 

 

마리 앙투와 네트 왕비의 집 앞의  정경

외부로는 들어 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프티 트리아농

 

 

그랑 트리아농

 

 

베르사이유 궁전 야경

 베르사이유 궁전 투어는 하루 종일 걸린것 같습니다.

워낙 넓은 부지에 방대한 규모의 볼거리와 넓은 정원과

두채의 별궁등.......

 

 

베르사이유 궁전 투어를 마치고 나니깐 이렇게 날이 저물어 버렸네요

 

 

투어를 마친 관광객들이 하나, 둘, 각자의 숙소로 돌아갈 시간.......

 

 

화려한 궁전의 야경이 프랑스의 옛 화려했던 시절을

대변해 주는것 같기도 하구요^^

 베르사이유 궁전 투어는 오늘 여기까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