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지구 한바퀴/프랑스

유럽여행 32일째 (프랑스 파리)2013년 12월 15일(일)

이쁜 비올라 2013. 12. 18. 07:55

 

오늘 프랑스 파리에서 날아온 아들의 첫번째 소식은

파리에 있는 겐조 매장에서 40유로에 겐조 모자를 구입했다고

카카오톡으로 몇 페이지 분량의 문자 자랑을 늘어 놓네요

 

 

한국에서 200,000-250,000 정도에 판매되는데 파리에 있는 겐조 매장에서만

판매된다고 딱 한 사이즈 남은것을 바로 구입 했다고 자랑을 엄청 늘어 놓더라구요

인수는 사이즈가 없어서 못 사서 아쉬워 한다든 둥......

 

 

이렇게 열심히 쇼핑하다 여행 자금이 바닥 나지는 않을지 궁금해서

현금 얼마 남았나고 물었더니 아주 여유 있다는 듯 얘길 하더라구요

왜냐하면 가족 카드를 하나 지참하고 나갔거던요 ㅠㅠ

일단 카드 사용 명세서를 확인해 봐야겠어요

엄청 마음대로 쓰고 있는 이 불안한 느낌은........

 

 

 

마들렌 성당

처음에 아들이 이 사진을 보내 주었을때 무슨 건물이지?

하고 의아해 했는데 그리스 신전 느낌이 나는 교회라고 하네요 

 

센강의 우안(右岸), 파리의 콩코드 광장으로 통하는 루이알 거리 끝,

마들렌 광장의 정면에 서 있는 높이 약 30 m, 정면 너비 43 m, 길이 108 m의

로마 신전(神殿)풍의 대건축물입니다.

 

 

 

1764년에 착공되었으나, 중도에 공사가 중단되어 나폴레옹 시대에는 기념관이 되었는데,

1806년에 현상공모에서 2등으로 뽑힌 비니옹의 설계에 따라 1842년에 완성되었답니다.

 나폴레옹 몰락 후 다시 성당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콩코르드 광장을 사이에 두고 국회의사당과 마주보고 있는 성당이랍니다.

  

 

그리스, 로마 양식을 따랐으며 코린트식 기둥 52개 건물을 받치고 있어

 파리에서 유일하게 그리스 신전 같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정면위쪽의 부조 <최후의 심판>과 내부의 조각 <마리아 막달레나의 승천상> 등이 특히 볼만하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승천상 '

 

 

내부 관람은 무료라고 합니다.

 

 

 

성 어거스틴 교회 (생토귀스탱교회)

 

 

성 어거스틴 교회 앞의 폴 뒤부아가 만든 잔다르크 동상 

 

 

빅토르 L. 발타르(Victor Louis Baltard)의 설계로 1860년에 짓기 시작하여

 1871년에 마무리 한 아름다운 건축물입니다.

고딕, 비잔틴, 르네상스 양식과 19세기의 새로운 양식이 혼재되어 있으며,

 특히 둥근 돔형의 지붕과 장미창, 파사드가 돋보입니다.

오페라 가르니에와 몽소공원 사이에 자리잡고 있으며

생라자르역에서 가까운데요, 교회 내부 곳곳에는 리타(Rita di Cascia),

베르나데트, 아우구스티누스 등 여러 가톨릭 성자들의 동상과 그림이 배치되어 있답니다.

 

 

 

콩코드 광장

 

 

동서길이 360m, 남북길이 210m. 파리에서 가장 큰 광장으로,

동쪽은 튈르리 공원에 이어지고 북쪽은 루아얄가(街)를 통해서 마들렌 성당과 마주하며,

서쪽은 샹젤리제거리와 통하고 남쪽에는 센강에 걸린 콩코르드교(橋)가 있습니다.

 

 

광장의 중앙에는 이집트로부터 기증받은  룩소르의 오벨리스크가 서 있고

 분수와 조상(彫像)이 있습니다.

 

 

콩코드 광장의 룩소르의 오벨리스크

 

 

18세기에  루이 15세의 명으로 만들어졌으며, A.J.가브리엘이 설계하였으며,

중앙에 루이 15세의 상(像)이 있어 ‘루이 15세 광장’으로 부르다가 프랑스혁명 때

루이 15세 상이 파괴되고 ‘혁명광장’으로 개칭되었답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 등 1,000여 명이 처형된 곳이기도 하다.

 뒤에 다시 ‘화합’을 뜻하는 ‘콩코르드’로 개칭되었습니다

 

 

프랑스 파리 시내에 있는 이 광장은 프랑스혁명 광장으로 알려졌으며

이곳에 단두대가 설치되고서 처형된 사람은 1,119명이랍니다.

 

 

1794년 말경 공포정치가 끝나고 명칭이 콩코르드 광장으로 바뀌었으며,

 이집트의 총독이 루이 필리프 왕에게 3,200년된

룩소르의 오벨리스크를 증정하여 이 광장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현재 파리의 콩코드 광장은 국민 화합을 뜻하는 광장이라고 합니다.

 

 

 

콩코드 광장 근처 유명 레스토랑 막심 드 파리 건물 2층에 있는

아르누보 작품들로 12개의 방으로 구성된 막심 드 파리 아르누보 박물관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의 유별난 취미로 시작된 박물관인데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천문학적 수입과 인맥을 바탕으로

최고급 물건만 수집한 컬렉션이라고 합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 에도 나왔던 파리의 유명 레스토랑 막심 드 파리

미식가들이 모이는 파리의 유명 레스토랑입니다.

물랑루즈와 함께 벨 에포크 시대의 꽃의 파리를 대표하는 장소.....

 

 

튈르리 정원

콩코르드 광장에서 루브르 궁전까지 이어지는 대정원으로서,

동부는 지난 날의 궁전 터이고, 서부는 유명한 조원가(造園家) 르노트르가 설계한

파리 시민들의 휴식처로, 콩코르드 광장과 루브르 궁전,

센강으로 둘러싸인 인공 정원이랍니다.

 

 

튈르리는 ‘기와 공장’이라는 뜻으로, 기와 공장이 있던 자리에

앙리 2세의 비(妃)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건축가 필리베르 들로름(1515∼1570)에게 명하여

1564년 궁전을 조영한 데서 비롯되었는데, 역대 왕실이 이를 확장하고,

설계도 바꾸어 보았으나 건축면에서는 보잘것없는 것이었다고 하네요.

 프랑스 혁명때 군중에게 손상을 입었으나 왕정복고와 함께 복구하여

왕가의 주거로 삼았고, 1871년 파리 코뮌 때 불이 나서

루브르궁(宮)에 이어져 있는 2개의 동쪽 날개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파괴되었답니다.

정원은 중앙부에 8각형과 원형의 연못을 연결하는 프롬나드가 있고,

 여러 곳에 신화나 역사와 관련 있는 조각이나 화단을 배치하여

지난 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튈르리 궁전과 오렌지 농원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는데

1871년에 화재로 튈르리 궁전이 소실되면서

오렌지 농원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의 오랑주리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답니다.

뒷쪽 건물이 오랑주리 미술관 입니다.

 

 

 

 

오랑주리 미술관

튈르리 정원(Jardin des Tuileries) 한쪽에 자리잡아

오르세 미술관(Orsay Museum)과 센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습니다.

1927년에 개관하였으며, 예술가들의 후원자이자 화상이었던

폴 기욤 (Paul Guillaume)과 기욤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부인이 재혼한 건축가 장 발터(Jean Walter)가 수집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답니다.

주로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특히 클로드 모네의 대표작인 <수련> 연작 중 가장 큰 작품들을 볼 수 있다고 하네요. 

본래 튈르리 정원 안의 식물원이었으나 모네의 <수련>을 전시할 목적으로

1999년부터 2006년까지 6년 동안의 건물 개조공사를 한 뒤

다시 문을 열었고 1층에는  <수련> 연작 <해질녘>과 <해뜰녁> 8점을

2개의 타원형 방 둥근 벽에 전시하고 있는데,

 길게 펼쳐진 대작을 자연 채광 속에서 시간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으로 감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밖에 세잔, 마티스, 모딜리아니, 피카소, 르누아르, 루소 등의

작품도 전시하고 있습니다.

 

 

튈르리 정원에서 바라본 센강 건너편의  오르세 미술관

 

 

 

 

 

 

퐁 데 자르 다리(예술의 다리)

튈르리 정원에서 오르세 미술관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퐁 데 자르 다리는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박물관을 연결해 주는

보행자 전용 다리랍니다.

 

1801~1804년에 건설된 퐁데자르 다리는 오랫동안 파리의 예술가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다리랍니다.

카뮈,사르트르,랭보 등이 즐겨 찾던 곳으로 그들은 다리 위에서 센강을 바라보며

숱한 작품을 구상했답니다.

 난간에 는 이렇게 수많은 자물쇠들이 달려 있는데

퐁 데 자르 다리에서 자물쇠를 채우고 센느강에 열쇠를 던지면 

그 사랑은 누구도 풀수가 없다고 하네요

  정말 낭만적인 곳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다리를 건너서 내려오면 도로 위에 이렇게 세계 지도가 그려져 있답니다.

 

 

 

 

알렌산드로 3세 다리 있는 쪽으로 걸어가는 길에 이렇게 도로편에

동상들이 쭉 있다고 합니다.

 

 

퐁 데 자르 다리 건너면 아래에 있는 시민들을 위한 공간인듯 합니다.

 

 

다양한 게임들을 즐길 수 있을거 같네요

 

 

시민들을 위한 깜찍한 아이디어 같아요

 

 

 

 

 

 

 

알렌산드로 3세 다리가 보입니다. 

19세기 후반에 건축된 다리는 황금색의 조각들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습니다.

다리의 끝은 아르누보 양식의 가로등과 그리스 신화의 여신이 장식되어 있고,

 이곳은 종종 드라마나 광고의 배경이 되기도 하는 곳이죠^^

 

 

앵발리드 군사 박물관

 

1670년 당시 루이 14세는 당시 그레넬평야라고 부르던 곳 부근에 앵발리드를 설립했는데,

 4,000명 가까운 노병들의 생활 근거지가 될 앵발리드는 당시 현역에 복무 중인

병사들의 급료 5년치를 징수한 기금으로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리베랄 브뤼앙(Liberal Bruant)의 설계로, 이 복합건물의 공사는

1671년 시작되어 1676년 완공되었고, 에스플라나드는 로베르 드 코트가 레이아웃한 것이랍니다.

쥘 아르두앵 망사르가 설계한 돔 공사는 1706년 시작되었는데,

 1708년 그가 죽었기 때문에 드 코트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1671년에 부상병 치료를 위해 지은 병원 및 노병을 위한 양로원이었는데,

 이후 군사박물관과 나폴레옹의 묘소가 들어서며 지금의 형태로 변했다고 하네요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를 습격할 때 군중들이 사용한 무기의 대다수는

 그날 아침 앵발리드로부터 탈취한 것이었는데, 경비병의 저항이 있었지만

 군중들은 다수의 힘으로 그들을 제압하고 지하에 있던 무기고로 들어가

약 2만 8000정의 무기를 탈취했다고 합니다.
 

 

앵발리드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은 1840년 나폴레옹의 유해가 돌아와

이곳에 안장된 것인데, 당시 프랑스 국왕이었던 루이 필리프는

영국 정부와 7년간에 걸친 협상 끝에 세인트헬레나로부터 황제의 유해를

 이장하는 허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황제의 사후 19년이 지난 1840년 10월 8일 관이 발굴되어 2분간 개봉된 뒤

프리깃함 라벨풀호에 선적되었고, 당시 임석했던 사람들은 유해가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르아브르에 도착한 뒤 유해는 센강을 거쳐 파리의 쿠르베부아에 상륙했고,

 1840년 12월 15일 국장이 거행되었으며 겨울의 폭설에도 불구하고 영구차는

개선문을 통해 샹젤리제, 콩코드 광장,에스플라나드를 거쳐 생제롬 교회에 도착하여

비스콘티가 설계한 묘당이 완공될 때까지 임시 안치되었다고 하네요.

1861년 4월 2일 나폴레옹 1세는 앵발리드 교회의  돔 아래에 있는

 지하 묘지에 최종적으로 안치되었답니다.

 

 

현재 다양한 행정 사무실과 함께 군사박물관(Musée de l'Armée),

군사입체모형박물관(Musée des Plans-Reliefs), 해방 훈장 박물관(Musée de l’Ordre de la Libération),

현대사 박물관(Musée d'Histoire Contemporaine)과 같은 주요 전시관이

 들어서 있다고, 황금지붕으로 상징되는 왕실의 돔 교회(Dôme Church) 뿐 아니라 

군인들의 교회로 불리는 17세기 예배당 생 루이 데 앵발리드 교회도 볼 수 있답니다

 

 

 

군사박물관에는 중세시대의 갑옷, 도끼, 대포 등의 각종 무기와

2차 세계대전의 자료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들은 내부는 입장을 안 하고 전체 건물만 둘러 보았다고 하네요

 

 

앵발리드 황금 돔 교회 아래 지하 묘지에 나폴레옹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위쪽 돔은 30만겹의 황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네요

 

 

로뎅 미술관

앵발리드 바로 오른쪽에 위치에 있답니다. 

 

 

아들은 미술관 내부는 패스하고 1유로에 정원 입장 티켓만 구입^^

 

 

파리에 있는 로댕의 국립 개인미술관으로 미술관 건물 오텔비롱은

 18세기에 건립된 뛰어난 저택으로, 만년에 이 건물을 매입하여

살던 로댕이 1916년 프랑스에 자신이 소장한 모든 작품과 함께

기증한 것이라고 합니다.

 

 

로뎅 미술관에서 보이는 앵발리드 왕실 교회 황금 돔

 

 

광대한 정원도 훌륭하며 『지옥의 문』, 『생각하는 사람』, 『카레의 시민』등이

적소에 배치 전시되어 있고, 당시 그대로의 분위기를 전해주는 관내에는

 로댕의 전작품 외에도 그가 평생에 걸쳐 수집한 고대로부터 현대까지의

뛰어난 미술작품과 방대한 자료가 소장 전시되고 있답니다.

 

 

아니....로뎅의 작품에 누가 이런 장난을 ㅎㅎ

 

정원에서는 하계(夏季)국제조각전이 개최되며, 파리 교외 뫼동의

로댕 아틀리에에서도 주형(鑄型), 석고원형 등이 진열 공개되고 있다고 합니다.

 

 

 

로댕의 대표작품인

'지옥의 문'

프랑스 정부로 부터 새로 지을 장식 미술관의 정문 조각을 주문 받아

제작한 이 작품은 그러나, 프랑스 정부의 미술관 건립 취소가 되었는데

로댕은 그후로도 4년이 넘도록 이 작품을 계속 수정했다고 합니다.

지옥의 문 가운데에도 생각하는 사람.....

 

 

시인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든 작품으로

미완성으로 남긴채 로댕이 세상을 떠났답니다.

 

 

 

 

 

 

 

 

 

로댕의 [빅토르 위고 기념상]

 

 

 

 

 

 

로댕의 [이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높이 186cm. 작품의 석고상(石膏像)은 1880년에 완성되어,

최초에는 《시인》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지옥의 문》의 문 윗 부분에서 아래의 군상(群像)을 내려다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1888년에 독립된 작품으로서 크게 하여 발표, 1904년 살롱에 출품하고부터 유명해졌답니다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한 《지옥의 문》의 가운데 시인을 등장시키려고 하는

로댕의 시도가 벗은 채로 바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여러 인간의 고뇌를 바라보면서 깊이 생각에 잠긴 남자의 상을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신 근육의 긴장에 의하여 격렬한 마음의 움직임을 응결시켜,

영원히 계속 생각하는 인간의 모습을 강력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살롱 출품 후 파리의 판테온에 놓아두었으나(1906∼1922),

그 후 로댕미술관의 정원으로 옮겨졌답니다.

모작품(模作品)의 하나는 로댕의 묘를 장식하였다고 하네요

 

인수의 [생각하는 사람]^^

좀 아닌것 같은데 ㅎㅎ

 

 

아들의 [생각하는 사람]

 

 

아직도 인수는 웬지 어색 ㅎㅎ

 

 

아들도 다시 도전

조금 비슷하긴 한데 옆에 종이가방 버리고...... ㅎㅎ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작품 앞에서 자신들의 '생각하는 사람'

작품 만들다가 해가 저물어 가서

다음 코스인 오르세 미술관을 향해 부랴부랴 발걸음을 옯겼다고 합니다 ^^

 

 

오르세 미술관으로 let's 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