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지구 한바퀴/프랑스

유럽여행 32일째 (프랑스 파리)2013년 12월 15일(일)

이쁜 비올라 2013. 12. 18. 09:03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포즈 잡다가 늦어져서 오르세 미술관은

한시간 밖에 구경 못했다는 엉뚱한 아들과 인수의 좌충우돌 유럽 이야기 !!

 

 

오르세 미술관은 내부 촬영이 전면 금지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들은 눈치봐 가면서 몇 작품 찍었다고 하네요^^

 

 

오르세 미술관

 1804년 최고재판소로 지어진 건물로 오르세궁이라 불렸으나 불타 버리고,

1900년 개최된 ‘파리만국박람회’를 계기로 파리국립미술학교 건축학 교수였던

빅토르 랄로에 의하여 오르세역으로 다시 지어졌습니다.

 

 

현대적으로 지은 역사(驛舍)였으나 1939년 문을 닫게 된 이후 방치되었다가

1979년에 현재의 미술관 형태로 실내 건축과 박물관 내부가 변경되어

1986년 12월 ‘오르세미술관’으로 개관되었다

 

오르세 미술관 내부 모습입니다.

 

 

인상파 미술관에 전시하던 인상파 회화를 비롯한 19세기 미술작품을 주로 전시하고 있으며,

  인상주의를 대변하는 많은 그림을 소장하고 있어

 일명 ‘인상주의 미술관’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현대 미술학의 살아 있는 교과서로서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  상징주의 등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가장 중요한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는

 전시공간일 뿐 아니라 공연·교육·토론의 장소로도 애용되는 다기능 문화 공간이랍니다. 

 

 

19세기 작품, 정확히 말해서 2월혁명이 일어난 1848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14년까지의 회화·조각·공예 등이

집대성되어 있답니다.

 

 

 1층에는 고전주의 거장 앵그르의 걸작 '샘'과 1800년부터 1850년대의 역사화,

샤를르 가르니에 설계의 오페라좌의 정밀 모형도,

1870년 이전의 인상파 회화와 사실주의 회화가 있답니다.

 

밀레의 《이삭줍기》와 《만종》, 인상파의 선구 마네의 《올랭피아》 《풀밭 위의 점심》

《피리 부는 소년》, 사실주의  작가 쿠르베의 《화가의 아틀리에》 등의 작품이 있습니다.

 

 

 

고흐의 자화상 (빈센트 반 고흐)

 

고흐는 사람들이 선뜻 그의 모델이 되기를 꺼려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인물화가라 칭하기를 좋아했던 반 고흐는 10년동안

무려 43점의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이 작품은 그가 끊임없는 망상과 발작에 시달려 왔을때 그려진 것으로

자신의 병의 심각성을 깨달은 반 고흐는 1889년 스스로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이곳에서 그는 몇달동안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에 전념하였는데

이대 6점의 자화상을 그렸으며, 그중 가장 격렬한 감정이 표출된것이

1889년 9월에 그려진 이 자화상이라고 합니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빈센트 반 고흐)

 

그는 프랑스 남부 지방의 아름다운 밤 풍경과 별이 무수히 빛나는 하늘을

무척 좋아했다고 하는데요 1888년 9월 아를에서 작성한 편지속에서

그는 별을 그리기 위해 밖으로 나갈것이라고 적기도 했다고 합니다.

 

반 고흐는 이 작품에서 하늘에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창조하기 위하여 전경의 땅을 축소 시킴으로서 이 작품 속에서

'무한의 공간에 대한 은유'를 창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층에는 아르누보실이 있으며 로댕의 《지옥의 문》과

 20세기 초 마티스, 보나르 등의 작품이 있으며,

 3층에는 모네, 드가, 르누아르, 세잔, 고갱, 고흐, 툴루즈로트레크 등의 인상파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고흐의 《화가의 방》, 드가의 《프리마 발레리나》,

 세잔의 《카드놀이를 하는 남자들》, 고갱의 《타이티의 여인들》 등이 있답니다.

 

19세기 미술의 중심은 인상파·후기인상파·신인상파 등의 회화이지만,

여기서는 회화뿐 아니라 그 그림이 탄생한 당시의 장식품·조각품·건축양식·

풍속 등도 볼 수 있는데, 19세기의 역사관이라 할 수 있답니다.

 

 

 

샘 (앵그르 작품)

 

크기는 세로 163㎝, 가로 80㎝이다. 앵그르의 1856년 작품으로,

앵그르는 《터키탕》 《오달리스크》 등 여러 작품에서 여체(女體)를 자주 그렸는데,

그는 여인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육체의 선을 정밀하면서도

 이상화된 모습으로 재현하는 데 몰두하였답니다.

앵그르가 만년에 그린 이 작품은 장식적인 아름다움과 새로운 관능미

그리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정확한 데생으로

그의 고전주의적 화풍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샘의 정령인 젊은 여인이 나신으로 물가에서 물항아리를 들고 서 있느데,

 마치 일부러 쏟아버리려는 듯한 자세로 들고 있는 물항아리에서는

자연의 근원을 뜻하는 맑은 물이 흘러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보이는 젊은 여인의 포즈는

그의 다른 작품인 《비너스의 탄생》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은은한 빛을 받으며 아름답게 빛나는 여인의 표정과 몸은,

그의 초기 작품과는 달리 건조하고 차가운 느낌을 발하는데,

이는 앵그르 노년에 그의 작업을 도운 그의 두 제자인

폴 발즈와 알렉상드르 데코프가 이 작품을 손보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뒷받침 해주기도 합니다.

 

 


 

 

이삭 줍는 여인들 (밀레)

 

추수가 끝난 황금빛 들판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나이 든 세  농촌 여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그림의 앞부분은 농촌의  실제 생활을, 뒷부분은 아름다운 자연과

목가적인  농촌을 그렸는데,  일하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소란스러움은

멀리 원경으로 밀려나 있으므로 화면은 깊은 정적에 잠겨 있어

세 사람의 모습에서는 엄숙함까지 느껴진답니다.

 

두 여인은 허리를 굽혀 땅에 떨어진 이삭을 줍고,

한 여인은 자신이 모은 이삭들을 간수하고 있으며, 시선은 오른쪽 끝 여인에게서

왼쪽의 두 여인에게로 부드럽게 흘러가서 세 사람을 한 무리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엷은 구름이 낀 하늘 아래 높이 쌓인 수확물들이 길게 늘어져

 고전적인 풍경을 이루고, 오른쪽 건물 앞에는 말에 탄 지주가 일꾼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밀레는 퐁텐블로 숲 근처의 샤이이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그렸는데,

이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추수하면서 땅에 흘린 이삭을 주워 가져가는 것은

 당시의 농촌 사회에서 널리 인정된 권리였답니다.

노르망디의 가난한 시골 농가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가난한 생활을 했던 밀레는

 과장하거나 감상도 섞지 않고, 일하는 농민의 모습을 종교적인 분위기로

 심화시켜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당시 비평가들은 농민의 모습만을 계속 그리는 밀레를 사회주의자라고 비난하였으며,

 1857년 살롱에 이 작품이 전시되었을 때도 농사 일을 하는

가난한 여인들의 모습이 지나치게 거만하게 표현되었다거나

'하층민의 운명의 세 여신'이라는 비평을 받았느데, 

 밀레는 물론 정치적인 이유에서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그린 것은 아니었으며,

스스로 가난한 생활을 체험해 보았기 때문에 인간을 미화하거나 이상화할 수 없었습니다. 

 

 

 

피리부는 소년 (마네)

 

크기는 세로 161㎝, 가로 97㎝로 마네의 1866년 작품으로, 

 이 그림의 모델은 마네의 친구인 르조슨 사령관이 데려온,

황제 친위대 곡예단의 페피니에르라는 피리 부는 소년이랍니다.

붉그스름한 회색 배경 앞에 경찰모자를 쓰고 붉은 바지를 입은

작은 키의 소년이 도드라져 보이는 그림인데요

소년은 얼굴을 정면으로 향한 채  피리를 불고 있는데,

 이 작품은 손과 발 부분을 빼고는 그림자가 전혀 없는 평면적인 묘사로

 인물의 실재감을 표출시키고 있으며,  종이를 바른 것처럼

단순한 배경은 실재감을 강조하는 효과를 줍니다.

마네는 일본의 판화가 우타마로처럼 검은색·붉은색·흰색의 색조로

 인물의 실루엣을 처리하고 있고, 이러한 기법은

1865년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하였을 때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모사하면서 배웠다는 사실이 마네의 편지에서 밝혀졌습니다.

이 그림이 1866년 살롱에서 거부되자, 당시 예술의 변화를 예감했던  에밀 졸라는

신문 기고를 통해 마네의 예술을 변호하였고,

졸라는 "그렇게 간결한 필치로 그처럼 힘있는 미적 효과를 내기란 쉽지 않다"며

마네의 정확성과 간결성을 높이 평가 하였답니다.

 

 

만종 (밀레)

 

19세기 프랑스의  바르비종파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의 작품으로

《이삭줍기》와 함께 밀레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하루 세 번 교회 종소리가 울리면 기도를 했던 당시의 풍습에 기대어

고단하고 소박한 농촌 풍경이 경건하고 존귀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시절을 농촌에서 보낸 밀레는

순박한 농부들의 이미지를 통해 순수한 전원생활에 대한 향수를

 화폭에 담았는데, 그는 노동을  하늘의 섭리로 알고

묵묵히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 속에서 도시와 상반되는 농촌의 가치를

 종교적 색채로 그려냈으며,  특히 이 그림은 단순히  노동에서 오는

기쁨뿐만 아니라 삶의 소박한 진실을 함께 전해 주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작품을 보면, 하루의 일과를 끝낸 한 농부 부부가

황혼이 지기 시작한 전원을 배경으로 삼종기도를 드리고 있느데,

 들판에 굳건하게 서 있는 이들 부부의 모습은 마치 대지와 하나가 된 것처럼 보이며,

먼 지평선에서 물들어가는 황혼 빛을 받고 있는 부부의 경건한 자세는

 종교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처음에 1,000프랑을 받고 국외로 팔려나간 후

많은 소장자들을 거쳐 1890년 프랑스인  알프레드 쇼샤르(Alfred Chauchard)에 의해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백화점 소유주였던 쇼샤르는

미국 예술협회에 80만 프랑이라는 거금을 주고 이 그림을 구입해

1906년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하였고, 이후 오르세 미술관으로 옮겨졌습니다.

 

《만종》에 얽힌 비밀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그림 속 농부 부부의 발치에 놓인 바구니는 수확한 작물을 담은 바구니가 아니라

원래 죽은 아이의 관으로 그려졌다는 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살바도르 달리에 의해 제기되었으며,

실제로 루브르 미술관에서 X선 검사를 통해 바구니가 초벌 그림에서는

 어린아이의 관 모양이었음을 입증하였답니다.  

그러나 밀레 연구자들은 달리의 주장을 근거 없는 것으로 단정 짓고 있으며,

일찍 세상을 떠난 형과 그로 인한 정신적 충격,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형의 존재를 대신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밀레의 작품을 죽음의 이미지와 연결시켜 해석했다고 합니다.

 

 한편, 아이의 관과 비슷한 상자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이 관인지 그림을 그릴 때 구도를 잡기 위한 밑그림인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만약 달리의 주장대로 라면 이 작품은 하루 일을 마치고

 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평화로운 작품이 아니라,

아이를 잃고 슬퍼하며 관을 묻기 전 마지막 기도를 올리는

 비극적인 그림이 되는 것이니깐요.......

 

 

 

루브르 박물관의 야경이 너무 멋있는 것 같네요

특히 피라미드가......

 

 

1981년 미테랑 대통령의 '그랑루부르' 정책에 의해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해

1989년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해에 완공된

유리 피라미드는 루브르 박물관 외관을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 시며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미테랑 대통령이 자신의 정부인 오르세 박물관 조각담당 큐레이터로

일했던 안 팽조를 위해 이 피라미드를 선물했다는 설도 있는데

암튼 어떻게 보면 프랑스라는 나라가 대통령의 사생활에는 관대한 것 같네요

 

대통령 집권 당시 거의 모든 밤을 정부인 안 팽조의 아파트에서 보냈고

둘 사이에 난 숨겨진 딸 마자린은 이제 프랑스 국립대 철학 교수가 되어

아버지 미테랑 대통령의 정신의 계승자로 언론의 조명을

한 몸에 받고 있으니......

 

 

특히나 미테랑 대통령의 장례식에 그의 정부인 안 팽조와 숨겨진 딸 마자린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핫 이슈는 우리나라로써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인것 같네요

 

 

미테랑 대통령의 이런 스캔들 등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재 

프랑스의 사형제도를 폐지한 대통령 ,문화 대통령으로

14년 동안의 재임기간 동안 프랑스 사회 개혁, 유럽 통합에의 기여 등

그의 공을 국민들은 높이 평가하고 있답니다. 

 

 

이 피라미드 건립 하나만으로도 미테랑 대통령은 역사속에서 프랑스 국민들에게'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인물일 것 같네요

 

 

 

소르본 대학 근처 맞집 골목이라고 합니다.

 

 

늦은 저녁으로 먹은 메뉴라고 하네요

 

 

말로만 듣던 달팽이 요리 

프랑스 하면 빠질수 없는 달팽이 요리인

에스카르고

 

프랑스 달팽이 요리 에스카르고는 헬릭스포마티아라는

식용 달팽이로 식욕을 돋구는 전체 요리 중 하나라고 합니다.

 

몸통을 빼낸 달팽이를 다시 껍질에 넣고 버터와 다진 파슬리를 넣어

오븐에 굽워서 나온다고 하네요

 

 

 

 

 

 

 

에펠탑 야경은 언제 보아도 멋있는 것 같네요

 

 

 

에펠탑 주변 크리스마스 마켓의 스케이트장

 

 

에펠탑 주변의 크리스마스 마켓

 

 

에펠탑 주변은 일년 12달 내내 사람들이 붐빈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에펠탑 하나만으로도 전세계 관광객들을 다 끓어 모으고 있는 것 같네요

 

 

 

프랑스 센강의 명물 유람선 바토 파리지앵 이용하러 갑니다.

 

 

 파리에서 여러개의 유람선 회사가 운영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바토무슈,바토뷔스,파토파리지앵.......

 

 

 

바토 파리지앵 선착장은 에펠탑 바로 아래에 있다고 합니다

 

 

파리의 유람선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한국의 다양한 여행사들에서 할인 판매를 하고 있으니

사전에 구입해서 가는 것도  경제적일것 같네요

그나마 바토 파리지앵은 학생 할인이 되고 바토무슈는

학생 할인이 안된답니다.

 

 

 

 

 

 

 

 

 

 

파리 주변의 웬만한 명소는 이 유람선을 타고 가면서

거의 다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각 자리마다 있는 이 음성 안내기를 통해서 해당되는 나라 번호를 누르면

각 명소들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바토 파리지앵 코스는 에펠탑 선착장에서 시작하여

오르세 미술관, 퐁네프 다리, 파리 시청사, 노트르담 성당 등을

돌아보는 코스 랍니다.

유람선 운행시간은 1시간 이라고 합니다.

 

 

노트르담 대성당도 보이고......

 

 

파리 시청사와 생트 샤펠도 보이고 

 

 

밤늦도록 파리 야경 투어를 하는 두 청년^^ 

 

 

 

 

 

 

 

 

 

 

 

 

 

 

 

 

 

 

 

오르세 미술관도 지나가고

 

 

 

 

 

 

 

 

 

 

 

 

 

알렌산드로 3세 다리

 

 

겨울 밤 공기가 차지도 않은지 사람들은 전부 배 난관으로 나와서

파리시내의 야경을 구경하고 있네요

 

 

파리를 갔다온 블로거들의 이야기들을 보니

파리 세느강의 유람선 투어 다들 추천하던데 정말 좋았을것 같네요^^

 

 

 

 

 

 

 

 

 

에펠탑이 파리 시내 전체를 환하게 밝혀 주는 것 같아요

 

에펠탑 야경 너무 너무 멋진것 같네요!!

 

 

 

 

파리에서의 겨울밤이 점점 깊어만 갑니다.

젊은날에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아들이 느끼길 바라면서......